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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1982년 8차보 다른 서문3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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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차보 다른 서문3 國之有史와 家之有譜가 雖殊大小나 其義則一也라. 國而無史則無以別百王之得失興亡하고 家而無譜則無以攷祖宗之由來라. 派流之同異와 以一身之分으로 至於千枝萬葉之繁하고 世代隨而邈遠하니 若無攷徵則同族相對에 怳若路人하야 喜而不慶하고 哀而不問하며 絶倫滅理하야 不歸於夷獸之域者가 幾稀矣라. 普天之下가 全歸若此則家不家而國不國矣라. 然則家之有譜가 豈負於國之有史也哉아. 此吾奇之所以修譜而亦收族也라. 惟吾幸州之奇는 自羅麗至於朝鮮에 受諡封君과 名公巨賢이 歷朝不絶하며 子孫蕃衍하야 蔓在八域하니 何其盛哉아. 當此滄桑之時에 亦不可無修譜之一念일새 故로 不拘少早하고 發議僉宗則或云太早하며 或稱力綿이라하되 南北諸族이 合席相討하야 遂得歸一하고 合謀始役하야 纔經一歲而功成하니 抑亦天佑之而然耶아 神助之而然耶아. 是役也에 蒙賴僉宗諸賢之大勞하시고 不肖亦參任末席하야 不敢無一辭之謝勞일새 故로 叙所感于中者如右하고 詳在頭文하니 必無贅錄矣로다. 光復後初壬戌三月日 後孫 永桓 謹序 국지유사國之有史(나라에 역사가 있음)와 가지유보家之有譜(집안에 족보가 있음)가 수수대소雖殊大小(비록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나 기의즉일야其義則一也(그 뜻은 하나)라. 국이무사國而無史(나라에 역사가 없으면)즉 무이별백왕지득실흥망無以別百王之得失興亡(역대 왕들의 득실과 흥망을 구별할 수 없고)하고 가지무보家之無譜(집안에 족보가 없으면)즉 무이고조종지유래無以攷祖宗之由來(조상들이 어디서 오셨는지 상고할 수 없음)라. 파류지동이派流之同異(갈래와 흐름의 같고 다름)와 이일신지분以一身之分(한 사람의 몸에서 나누어짐)으로 지어천지만엽지번至於千枝萬葉之繁(마침내 천 가지 가지와 만 개의 잎사귀처럼 번성해짐)하고 세대수이막원世代隨而邈遠(세대가 지남에 따라 아득히 멀어짐)하니, 약무고징若無攷徵(만약 고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즉 동족상대同族相對(동족끼리 서로 마주 보아도)에 황약수인怳若路人(황량하기가 마치 길 가는 낯선 사람과 같아서)하야 희이불경喜而不慶(기쁜 일이 있어도 축하하지 않고)하고 애이불문哀而不問(슬픈 일이 있어도 문상하지 않으며), 절윤멸리絶倫滅理(인륜을 끊고 천리를 멸하여)하야 불귀어이수지역자不歸於夷獸之域者(오랑캐나 짐승의 영역으로 떨어지지 않는 자)가 기희의幾稀矣(거의 드물 것)라. 보천지하普天之下(온 세상)가 전귀약차全歸若此(온통 이와 같은 지경으로 돌아간다면)즉 가불가이국불국家不家而國不國(집안은 집안답지 못하고 나라는 나라답지 못하게 됨)의라. 연즉연즉(그렇다면) 가지유보家之有譜(집안에 족보가 있는 것)가 기부어국지유사야재豈負於國之有史也哉(어찌 나라에 역사가 있는 것에 뒤지겠는가)! 차오기지소이수보이역수족야此吾奇之所以修譜而亦收族也(이것이 우리 기씨 가문이 족보를 수정하고 또한 일족을 화목하게 거두는 이유)라. 유오행주지기惟吾幸州之奇(생각건대 우리 행주 기씨는)는 자라려지어조선自羅麗至於朝鮮(신라와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에 수시봉군受諡封君(시호를 받고 군에 봉해진 분들)과 명공거현名公巨賢(명상과 큰 현인들)이 역조부절歷朝不絶(역대 조정에 끊이지 않았음)하며 자손번연子孫蕃衍(자손들 또한 번성하여)하야 만재팔역蔓在八域(팔도에 널리 퍼져 살고 있음)하니 하기성재何其盛哉(어찌 그 성대함이 대단하지 않겠는가)아. 당차창상지시當此滄桑之時(이처럼 세상이 급변하는 격동의 시기를 당하여)에 역불가무수보지일념亦不可無修譜之一念(또한 족보를 보수해야겠다는 한 줄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일새 고로불구소조不拘少早(그리하여 조금 이른 감이 있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하고 발의첨종發議僉宗(여러 종친에게 발의함)즉 혹은 태조或云太早(어떤 이는 너무 이르다고도 하고)하며 혹은 역면或稱力綿(어떤 이는 역량이 부족하다고도 지적함)이라하되, 남북제족南北諸族(남북의 여러 종친)이 합석상토合席相討(한자리에 모여 서로 토론하여)하야 수득귀일遂得歸一(마침내 의견이 하나로 귀일되었고)하고 합모시역合謀始役(마음을 합쳐 역사를 시작함)하야 재경일세이공성纔經一歲而功成(겨우 1년 만에 공공연히 성공을 거두었음)하니 억역천우지이연야抑亦天佑之而然耶(이 또한 하늘이 도우셔서 그런 것인가)아 신조지이연야神助之而然耶(신령이 도우셔서 그런 것인가)아. 시역야是役也(이 보수 작업)에 몽뢰첨종제현지대로蒙賴僉宗諸賢之太勞(여러 종친 현현들께서 큰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덕분을 입었음)하시고 불초역참임말석不肖亦參任末席(못난 저 역시 말석의 소임을 맡아 참여하였음)하야 불감무일사지사로不敢無一辭之謝勞(감히 그 노고에 감사하는 한마디의 말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음)일새 고로서소감우중자여우故로 叙所感于중者如右(이에 가슴속에 느낀 바를 위와 같이 서술하고)하고 상세두문詳在頭文(자세한 내용은 앞의 머리말에 나와 있음)하니 필무췌록의必無贅錄矣(더 이상 쓸데없는 기록을 보태지 않는다)로다. 광복후초임술삼월일光復後初壬戌三月日(광복 후 첫 임술년 3월 일) 후손영환근서後孫 永桓 謹序(후손 영환은 삼가 서문을 쓰다). 나라에 역사가 있고 집안에 족보가 있는 것은 비록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그 뜻은 하나이다. 나라에 역사가 없으면 역대 왕들의 득실과 흥망을 구별할 수 없고, 집안에 족보가 없으면 조상들이 어디서 오셨는지 상고(詳考)할 수 없다. 갈래와 흐름의 같고 다름은 한 사람의 몸에서 나누어져 마침내 천 가지 가지와 만 개의 잎사귀처럼 번성해지고, 세대가 지남에 따라 아득히 멀어진다. 만약 고증할 만한 증거(족보)가 없다면 동족끼리 서로 마주 보아도 황량하기가 마치 길 가는 낯선 사람과 같아서, 기쁜 일이 있어도 축하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문상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인륜을 끊고 천리를 멸하여 오랑캐나 짐승의 영역으로 떨어지지 않는 자가 거의 드물 것이다. 온 세상이 온통 이와 같은 지경으로 돌아간다면 집안은 집안답지 못하고 나라는 나라답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집안에 족보가 있는 것이 어찌 나라에 역사가 있는 것에 뒤지겠는가! 이것이 우리 기씨(奇氏) 가문이 족보를 수정하고 또한 일족을 화목하게 거두는 이유이다. 생각건대 우리 행주 기씨(幸州 奇氏)는 신라와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시호를 받고 군(君)에 봉해진 분들과 명상(名相)과 큰 현인들이 역대 조정에 끊이지 않았다. 자손들 또한 번성하여 팔도(八域)에 널리 퍼져 살고 있으니 어찌 그 성대함이 대단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세상이 급변하는 격동의 시기(滄桑之時)를 당하여 또한 족보를 보수해야겠다는 한 줄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금 이른 감이 있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종친에게 발의하니, 어떤 이는 "너무 이르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역량이 부족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남북의 여러 종친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토론하여 마침내 의견이 하나로 귀일되었고, 마음을 합쳐 역사를 시작한 지 겨우 1년 만에 공공연히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 또한 하늘이 도우셔서 그런 것인가, 신령이 도우셔서 그런 것인가! 이 보수 작업에 여러 종친 현현(諸賢)들께서 큰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덕분을 입었으며, 못난 저 역시 말석의 소임을 맡아 참여하였기에 감히 그 노고에 감사하는 한마디의 말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가슴속에 느낀 바를 위와 같이 서술하고, 자세한 내용은 앞의 머리말(頭文)에 나와 있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기록을 보태지 않는다. 광복 후 첫 임술년(1982년) 3월 일 후손 영환(永桓) 삼가 서문(序)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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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1982년 8차보 발문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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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차보 발문 族有譜尊所生而重其序也冒姓之常典承家之信史何敢不敬何敢不重乎書姓貫孫錄配位生卒年月日墓所履歷備焉自祖諱以下長摘承代衆庶傍而女後別其序正其體者敬於承祀也尊祖重宗譜法成矣前千年系統不亂後千年宗支有序派分傍達血脈貫通雖無親而一面情篤雖不面而聞相心悅宜兄宜弟封疆無以界是叔姪鬼神莫能欺是之信史也一身而爲家家分而爲族遂族大而彌于六合則不能昭代代不昭則不能叙行行不叙則族不族矣往哲恐懼乎失其序而忝所生故譜所以作也維我奇氏始姓于韓末上溯箕聖傳國者千百有餘年矣下千年及于今功加于上下者幾乎百歲道學文章忠孝節義爲世著姓而譜凡七修始於甲辰中於丙申癸丑後於丁酉規模大備然距今年近三十 矣其間生產嫁娶倍於修譜當日會長回出氏以外數三賢宗心血傾注相互蒐錄將付之剞劂然歷年旣久治亂相仍書亦不無疑信傳亦不無漏一之感而庶可免杞宋之無證於承先裕後涉世之道幾乎可得矣 壬戌春正月上弦 老珏 謹識 족유보族有譜(씨족에 족보가 있는 것은) 존소생이중기서야尊所生而重其序也(태어난 바 바탕을 존중하고 그 차례를 엄중히 여기는 것이니), 모성지상전冒姓之常典(가문의 성씨를 바르게 이어받는 떳떳한 법도요) 승가지신사承家之信史(집안을 이어가는 믿을 만한 역사이다). 하감불경하감불중호何敢不敬何敢不重乎(어찌 감히 공경하지 않으며 어찌 감히 중히 여기지 않겠는가)! 서성관손록書姓貫孫錄(성씨와 본관을 쓰고 자손을 기록하며) 배위생졸년월일묘소이력비언配位生卒年月日墓所履歷備焉(배우자의 인적사항과 생졸년월일, 묘소, 이력을 갖추어 기록하느니라). 자조휘이하長摘承代自祖諱以下長嫡承代(조상의 휘 아래로 장손이 대를 이어가고) 중서방이녀후衆庶傍而女後(지손들은 곁으로, 딸들은 뒤로 배치하여) 별기서정기체자別其序正其體者(그 차례를 구별하고 체재를 바르게 하는 것은) 경어승사야敬於承祀也(제사를 이어감에 공경을 다하기 위함이니), 존조중종보법성의尊祖重宗譜法成矣(조상을 존경하고 종중을 중히 여기는 족보의 법식이 완성되는 도다). 전천년계통불란前千年系統不亂(앞으로의 천년 동안 계통이 어지럽지 않고) 후천년종지유서後千年宗支有序(뒤로의 천년 동안 종파와 지파에 차례가 있어) 파분방달派分傍達(파가 나뉘고 곁으로 뻗어가도) 혈맥관통血脈貫通(혈맥이 하나로 꿰뚫어 통하게 된다). 수무친이일면정독雖無親而一面情篤(비록 친분이 없어 한 번만 만나도 정이 돈독해지고) 수불면이문상심열雖不面而聞相心悅(비록 대면하지 못했어도 소식을 들으면 서로 마음이 기쁘니), 의형의제宜兄宜弟(형답고 아우다워짐에) 강계무이계시疆界無以界是(나라의 경계라도 이들을 갈라놓을 수 없고) 숙질叔姪(숙질의 정에) 귀신모능기시지신사야鬼神莫能欺是之信史야(귀신이라도 속일 수 없는 이것이 바로 믿을 만한 역사이다). 일신이위가가분이위족一身而爲家家分而爲族(한 몸이 집안을 이루고 집안이 나누어져 씨족이 되니) 수족대이미어육합遂族大而彌于六合(마침내 종족이 커져서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되면) 즉 불능소대대부소則不能昭代代不昭(대대로 밝히지 못하게 되고, 대대로 밝히지 못하면) 즉 불능서행행불서則不能叙行行不叙(항렬의 차례를 차릴 수 없게 되며, 항렬을 차리지 못하면) 즉 족불족의則族不族矣(종족이 종족답지 못하게 되느니라). 왕철공구호失其序而忝所生往哲恐懼乎失其序而忝所生(과거의 현인들이 그 차례를 잃고 태어난 바 조상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고보소작야故譜所以作也(임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이다). 유가기씨始姓于韓末維我奇氏始姓于韓末(생각건대 우리 기씨는 마한 말기에 처음 성을 얻어) 상수기성傳국자千百有餘年矣上溯箕聖傳國者千百有餘年矣(위로는 기자 성인까지 거슬러 올라가 나라를 전한 지가 천백여 년이나 되었고), 하천년급우금下千年及于今(아래로 천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가우상하자幾乎百세功加於上下者幾乎百世(상하 조야에 공훈을 더한 지가 거의 백 세에 달하도다). 도학문장忠孝節義爲世著姓道학文章忠孝節義爲世著姓(도학과 문장, 충효와 절의로 세상의 저명한 성씨가 되었으니) 이보범칠수始於甲辰中於丙申癸丑後於丁酉이譜凡七修始於甲辰中於丙申癸丑後於丁酉(족보는 무릇 일곱 번을 고쳐지어 갑진년에 시작하고 중간에 병신년과 계축년을 거쳐 뒤에 정유년에 이르러) 규모대비규모대비(규모가 크게 갖추어졌다). 연거금년近三十년矣然距今年近三十年矣(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역산하면 거의 30년이 지났는지라) 기간생산장취其間生產嫁娶(그 사이에 태어나고 시집 장가간 이들이) 배어수보당일倍於修譜當日(족보를 만들 당일보다 배나 되도다). 회장회출씨이외會長回出氏以外(회장 기회출 씨 이외에) 수삼현종심혈경주數三賢宗心血傾注(두세 분의 현명한 종친들이 심혈을 기울여) 상호수록相互蒐錄(서로 자료를 찾고 수집하여) 장부지기굴將付之剞劂(바야흐로 인쇄에 붙이려 하였다). 연역년기구治亂상잉然歷년旣久治亂相仍(그러나 지나온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고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서로 이어져) 서역불무의신傳역불무누실지감書亦不無疑信傳亦不無漏失之感(기록 역시 의심스럽거나 믿을 만한 부분이 없을 수 없고 전해지는 이야기 또한 빠진 듯한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이서가면기송지무증어승선유후이庶可免杞宋之無證於承先裕後( 조상의 뜻을 이어받고 후손을 넉넉하게 함에 기나라나 송나라처럼 고증할 길 없는 부끄러움은 거의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섭세지도기거득의涉世之道幾乎可得矣(세상을 건너가는 도리를 거의 얻었다고 할 수 있도다). 임술춘정월상현壬戌春正月上弦(임술년 1982년 봄 정월 초순에) 노각근식老珏謹識(노각은 삼가 기록하노라). 씨족에 족보가 있다는 것은 내가 태어난 근본을 존중하고 그 차례를 엄중히 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문의 성씨를 바르게 이어받는 떳떳한 법도이자 집안을 이어가는 믿을 만한 역사이니, 어찌 감히 공경하지 않으며 어찌 감히 중히 여기지 않겠는가! 성씨와 본관을 명확히 쓰고 자손들을 기록하며, 배우자의 인적사항과 나고 죽은 년월일, 묘소의 위치 및 평생의 이력을 빠짐없이 갖추어 기록한다. 조상의 휘(이름) 아래로 장손이 대를 이어 중심을 잡고, 지손들은 곁으로 배치하며 딸들은 뒤로 배치하여 그 차례를 구별하고 체재를 바르게 세우는 것은, 제사를 이어감에 공경을 다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조상을 존경하고 문중을 중히 여기는 족보의 법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의 천년 동안 계통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뒤로의 천년 동안 종파와 지파에 엄연한 차례가 생겨, 파가 나뉘고 사방으로 멀리 뻗어가더라도 혈맥이 하나로 꿰뚫어 통하게 된다. 비록 친분이 없어 평생 처음 대면하더라도 피붙이의 정이 돈독해지고, 비록 얼굴을 보지 못했어도 소식을 들으면 서로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진다. 형답고 아우다워지는 정과 숙질 간의 의리에 있어서는 나라의 경계선이라도 갈라놓을 수 없으며, 귀신이라도 속일 수 없는 진실한 역사가 바로 이것이다. 한 사람이 자라 집안을 이루고 집안이 번성하여 씨족이 되니, 마침내 종족이 커져서 온 세상에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만약 대대로 조상을 밝히지 못하면 항렬의 차례를 정할 수 없게 되고, 항렬의 차례를 정하지 못하면 종족이 종족답지 못하게 된다. 과거의 현인들이 그 계보의 차례를 잃고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조상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바로 이 때문에 족보를 만드는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 기씨(奇氏)는 마한 말기에 처음 성을 얻은 이래로, 위로는 기자 성인(箕聖)까지 거슬러 올라가 나라를 전하고 다스린 지가 천백여 년이나 되었고, 아래로 다시 천년이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정과 민간에 커다란 공훈을 더한 지가 거의 백 세(3,000년)에 달한다. 도학과 문장, 충효와 절의로 세상이 다 아는 명문거족(著姓)이 되었으니, 우리 족보는 그동안 무릇 일곱 번을 고쳐지었다. 갑진년에 첫 족보를 시작하여 중간에 병신년과 계축년을 거쳐 지난 정유년에 이르러 마침내 거대한 규모를 온전히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벌써 거의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새로 태어나고 시집 장가간 일가가 지난날 족보를 만들 당시에 비해 배나 늘어났다. 이에 당시 종친회장이셨던 기회출(奇回出) 씨를 비롯하여 두세 분의 현명한 종친들이 심혈을 기울여 서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여 바야흐로 인쇄에 부치려 한 것이다. 지나온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고 세상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번갈아 이어졌으니, 수집된 기록 중에 혹 의심스럽거나 전해지는 과정에서 빠진 듯한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의 뜻을 이어받고 후손들을 넉넉하게 인도함에 있어서, 고증할 문헌이 없어 애태우던 옛 기나라나 송나라의 부끄러움은 거의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를 거의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임술년(1982년) 봄 정월 상순에 후손 노각(老珏)은 삼가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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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1982년 8차보 다른 발문2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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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차보 다른 발문2 夫譜者 叙昭穆明彛倫 以敦親親之誼者也 以是心爲譜 孝悌之心 可以油然 而生矣 譜之爲重於人家 固如是也 惟我奇氏 數千載名公巨宰 繼世而作 柄耀史策 子姓又蕃衍 蔚然海東名族 世人稱吾奇獨高於古今者 殆無怪也 吾宗之譜自 顯宗五年甲辰 三百餘年之間 續修者 累矣 然尚有未盡之歎 派居於各鄕者 取約爲譜 所嘗記傳者 次聞見之同異 遂成岐貳之弊 盖根深 則枝茂 源遠則流長 固難免其混焉是以 其初則同出於一根源而莫辨其支流 兄弟或失序 叔姪或相錯 視之如秦越 奚可以講睦而致孝悌之道哉 識者之所 慨恨不己者也 柄樹一 自所任於大宗中以來 間嘗閱譜 遊迎宗親之際 頗有秦越之感而思欲統合修譜 爲爛漫同歸之計 五個星霜徒過 遂擅紀四三一四年辛酉三月三十一日大會 宗族於一堂 詢謀僉同 於是輪告於派門地域別組識 一齊收單 功始告竣 人將曰任司者之誠勤攸到而祖宗冥佑之力實多焉 所恨南北分疆 在北宗親未及統一於是役可期第有所感而 編修會長回出 常任委長南舒 編修部靈命 財務世殷 總務世豐 堅執不渝 始自收單 至於發刊 其爲賢勞 不尠故 兹敢表謝云爾 擅紀四三一五年壬戌四月 日 后孫 柄樹 跋 夫譜者, 叙昭穆, 明彛倫, 以敦親親之誼者也. 以是心爲譜, 則孝悌之心, 可以油然而生矣. 譜之爲重於人家, 固如是也. 惟我奇氏, 數千載名公巨宰, 繼世而作, 柄耀史策, 子姓又蕃衍, 蔚然爲海東名族. 世人稱吾奇獨高於古今者, 殆無怪也. 吾宗之譜, 自顯宗五年甲辰, 三百餘年之間, 續修者累矣, 然尚有未盡之歎. 派居於各鄕者, 取約爲譜, 所嘗記傳者, 次聞見之同異, 遂成岐貳之弊. 盖根深則枝茂, 源遠則流長, 固難免其混焉. 是以其初則同出於一根源而莫辨其支流, 兄弟或失序, 叔姪或相錯, 視之如秦越, 奚可以講睦而致孝悌之道哉! 識者之所慨恨不已者也. 柄樹自所任於大宗中以來, 間嘗閱譜. 遊迎宗親之際, 頗有秦越之感, 而思欲統合修譜, 爲爛漫同歸之計. 五個星霜徒過, 遂以檀紀四三一四年辛酉三月三十一日, 大會宗族於一堂, 詢謀僉同. 於是輪告於派門, 地域別組織, 一齊收單. 功始告竣, 人將曰任司者之誠勤攸到, 而祖宗冥佑之力實多焉. 所恨南北分疆, 在北宗親未及統一於 是役, 可期後日有所感而. 編修會長回出, 常任委長南舒, 編修部長靈命, 財務世殷, 總務世豐, 堅執不渝, 始自收單, 至於發刊, 其爲賢勞不尠. 故兹敢表謝云爾. 檀紀四三一五年壬戌四月 日 后孫 柄樹 跋 무릇 족보라는 것은 소목(昭穆, 조상의 차례)을 서술하고 인륜(彛倫)을 밝혀 친족끼리 서로 친애하는 정의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족보를 만든다면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기름지듯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것이다. 족보가 사람들의 집안에서 중하게 여겨짐이 진실로 이와 같다. 생각건대 우리 기씨(奇氏) 가문은 수천 년 동안 이름난 공신과 큰 재상들이 대를 이어 나타나 역사 책에 그 활약이 찬란히 빛나고 있으며, 자손들 또한 번성하여 해동(우리나라)의 명문거족으로 울창하게 자리 잡았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씨를 두고 고금을 통틀어 독보적으로 고결하다고 칭찬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문중의 족보는 현종 5년 갑진년(1664년) 이래로 300여 년의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이어 고쳐왔으나, 오히려 아직 다하지 못한 아쉬움의 탄식이 남아 있었다. 각 고을에 흩어져 사는 파문들이 저마다 요약하여 족보를 만드니, 일찍이 기록하여 전해오던 바가 들은 견문의 다름에 따라 마침내 서로 갈라지고 어긋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대개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샘이 깊으면 물줄기가 길게 흐르는 법이니, 오랜 세월 속에 계통이 뒤섞이는 일은 진실로 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같이 나왔으면서도 그 갈라진 지류를 판별하지 못해, 형과 아우의 차례가 혹 바뀌기도 하고 숙질 간이 서로 착오가 생기기도 하여, 이들을 바라보기를 마치 나와 상관없는 진나라나 월나라 사람 보듯 하니, 어찌 화목을 다지고 효제(孝悌)의 도리를 지 지극히 이룰 수 있겠는가! 이는 뜻있는 식자들이 개탄하고 한탄해 마지않던 바였다. 저 병수(柄樹)가 대종회에서 소임을 맡은 이래로 간간이 족보를 열람해 보았다. 종친들을 두루 만나 교유하는 동안에 자꾸만 서로 소외감을 느끼는 '진월(秦越)의 감정'이 생겨나, 마침내 온 문중을 하나로 통합하여 완벽하게 한 뿌리로 돌아가게 할 대동의 계획을 세우고 통합 수보를 열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안 없이 다섯 번의 서리(5년의 세월)를 헛되이 보낸 끝에, 마침내 단기 4314년(1981년) 신유년 3월 31일에 온 종족을 한자리에 크게 모아 의견을 물으니 모두의 뜻이 같았다. 이에 각 파문과 연락을 취하고 지역별로 조직을 구성하여 일제히 단자(단수)를 거두어들였다. 이제 역사(족보 간행)를 시작하여 마침내 준공을 고하게 되니, 사람들은 장차 소임을 맡은 자들의 정성과 부지런함이 이른 결과라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조상님들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신 힘이 실로 컸던 덕분이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남북의 국토가 갈라져 있는 탓에 북한에 있는 종친들이 이번 역사에 미처 함께 합류하지 못한 점이다. 훗날을 기약하며 느끼는 바가 있어 기록해 둔다. 당시 편수회장이신 기회출(奇回出) 님, 상임위원장이신 기남서(奇南舒) 님, 편수부장이신 기영명(奇靈命) 님, 재무이신 기세은(奇世殷) 님, 총무이신 기세풍(奇世豐) 님께서 굳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수단을 시작할 때부터 책을 발간할 때까지 보여주신 그 어질고 노고 가득한 정성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에 감히 감사의 뜻을 표하여 밝히는 바이다. 단기 4315년(1982년) 임술년 4월 일 후손 병수(柄樹) 삼가 발문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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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1982년 8차보 다른 발문3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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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차보 다른 발문3 詩有云, “枝葉未有害, 本實先撥.” 夫盈把之木, 無合抱之枝, 榮澤之水, 無吞舟之魚. 根薄則枝葉短, 源淺則川澤涸. 山林茂盛則禽獸歸之, 水淵深廣則魚龍生之. 是故, 求木之長者, 必固其根, 欲流之遠者, 必濬其泉. 況於一門族姓之尊祖承祧, 固根濬泉之道乎! 凡修譜之義, 所以奠系世而尊祖宗, 辨昭穆而知本支, 錫胤萬生, 弘徽百世, 可爲繼志述事之信史也. 百世之下, 崇祖報功之道, 齊明承祀, 順乎鬼神. 順乎鬼神則降福孔皆; 喪祭禮廢則人子恩薄, 人子恩薄則背死忘先者衆矣. 夫子以餼羊尊告朔之禮, 曾子以追遠求歸厚之道. 故黔首虔誠, 蒸畀祖妣, 以洽百禮, 則陰陽調, 三光清, 景福肸蠁. 所謂“林茂鳥棲, 獸淵深生龍”, 顧不在於斯歟! 小雅曰, “子子孫孫, 勿替引之.” 信斯言也. 式禮莫愆, 閱幾星霜. 年代浸邈, 杞宋無徵, 則祖宗杳茫, 遺烈不揚. 或寢廟斯傾, 烝嘗之位廢焉; 或遺澤僅及幾世, 私勝恩掩之蔽起焉. 如斯則豈所謂崇祖報功, 盛德百世必祀者哉! 凡我諸宗, 身屬同支, 誼敦一本. 故推慕於先祖之至, 而擴愛於無窮之遠. 屬會有時而團拜有禮, 廓阻閡而結渙散, 袪彼我而絕猜疑. 不以富貴驕之, 寒賤以微之, 毋以黨目設畦畛, 而貨利爲先. 護惜如肌膚, 倚伏若手足, 歡欣融液, 恩意流通. 能以袒免共爨之心, 篤百世之親, 以致一門無疆之福, 則豈異夫固根之木, 有合拱之枝乎! 嗟夫! 遭世竊位, 紱麟之祥久矣. 闕里蕭條, 不聞講誦之聲. 爲士者扭於彫薄苟簡之습, 而聖學則常骪骳以不振. 語道學則迷大本, 論事實則尚權道, 炫浮華而忘本實, 貴通達而賤名檢, 莫之紀綱, 禮儀廢壞, 彝倫不理, 混然無道. 其肢體之序與禽獸同節, 言語之暴與蠻髦不殊. 出則爲宗族患, 入則爲鄉里憂. 此害天理而亂人倫, 妨大道而敗風教. 不勝十寒衆楚之憂. 不肖襪線無長, 佔畢迂儒, 不堪世用, 終作江湖散人. 幸於螢爝之末, 依日月之明而苟存. 屬不佞叙其跋辭, 不獲不揆賤陋, 率爾以操觚, 揭其感慕祖宗族姓之根也. 根固則枝葉茂, 尊祖則永錫祚胤. 尊祖之道, 禘祭虔誠. 目下倫禮俱喪之際, 恐或祖宗崇慕肅敬日益陵遲, 同宗敦睦汎愛漸染嚚頑, 或不合乎隆殺之節, 而未盡乎委曲之情. 故余以此略叙蕪辭, 敢以是書之卷端, 爲以先祖似續之意云爾. 後孫 宇河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가지와 잎사귀는 아직 해를 입지 않았어도, 뿌리가 먼저 뽑힌다”라고 하였다. 대개 한 움큼밖에 안 되는 나무에는 아름드리 가지가 날 수 없고, 작은 못의 물에는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가 살 수 없다. 뿌리가 얕으면 가지와 잎사귀가 짧고, 근원이 얕으면 시내와 못이 마르는 법이다. 산림이 무성하면 짐승들이 돌아오고, 못이 깊고 넓으면 물고기와 용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나무가 자라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그 뿌리를 단단하게 해야 하고, 물이 멀리 흐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그 샘 구멍을 깊게 파야 한다. 하물며 하나의 가문과 씨족이 조상을 존경하고 제사를 받드는 일에 있어서, 뿌리를 단단히 하고 샘을 깊게 파는 도리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릇 족보를 수정하는 대의는 가문의 계통을 바로 세워 조상님들을 존경하고, 소목(昭穆, 차례)을 분별하여 본파와 지파를 알며, 수많은 후손에게 복을 내리고 백세에 걸쳐 가문의 빛나는 업적을 넓히는 것이니, 참으로 선조의 뜻을 이어받고 행적을 기술하는 믿을 만한 역사라 할 수 있다. 백세가 지난 뒤에도 조상을 숭상하고 그 공덕에 보답하는 길은, 재계하고 제사를 받들어 신명(귀신)을 순리대로 따르는 데 있다. 신명을 순리대로 따르면 내리는 복이 매우 클 것이요, 상례와 제례가 폐지되면 자식 된 자의 은혜와 정이 엷어질 것이니, 자식의 은혜가 엷어지면 죽은 이를 배반하고 조상을 잊는 자가 많아질 것이다. 공자께서 희생으로 바치는 양을 아까워하지 않고 매달 초하루의 고삭(告朔) 의례를 보존하려 하셨고, 증자께서는 조상의 먼 조상까지 추모(追遠)하여 백성들의 덕성을 두텁게 돌려놓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백성들이虔誠(虔誠)을 다해 조상님들께 제사를 올려 온갖 예법을 융숭하게 합치시키면, 음양이 조화롭고 해와 달과 별이 맑아지며 큰 복이 보이지 않는 사이에 스며들게 된다. 이른바 “수풀이 무성해야 새가 깃들고, 못이 깊어야 용이 태어난다”는 말이 어찌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시경》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자손들이 선조의 뜻을 바꾸지 말고 길이 이어가라” 하였으니, 이 말은 참으로 믿을 만하다. 예법에 어긋남이 없이 몇 해의 성서(세월)를 지내왔으나, 연대(年代)가 점차 아득해지고 고증할 문헌조차 없어지면 조상의 자취는 아득히 잊혀 가고 그분들이 남기신 훌륭한 업적은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혹 사당이 기울어져 제사가 폐지되기도 하고, 혹은 조상의 덕택이 겨우 몇 대에만 미쳐 사리사욕이 이기고 은혜를 가리는 가림막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된다면 어찌 이른바 ‘조상을 숭상하고 공덕에 보답하며, 성대한 덕을 백세토록 반드시 제사 지낸다’는 뜻이 되겠는가! 무릇 우리 모든 종친은 몸이 같은 지파에 속해 있고 의리는 한 뿌리에 돈독하다. 그러므로 선조를 추모하는 지극한 마음을 미루어 끝없는 먼 친척에게까지 사랑을 넓혀야 한다. 종친회가 열릴 때마다 함께 모여 절하는 의리를 갖추고, 가로막힌 장벽을 넓혀 흩어진 일가들을 결속시키며, 네 편 내 편을 없애고 시기와 의심을 끊어야 한다. 부귀하다고 해서 교만하게 굴지 말고, 빈한하고 천하다고 해서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붕당을 지어 경계를 만들고 재물과 이익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서로를 내 피부처럼 아끼고 손발처럼 의지하며, 기쁨을 함께 녹여내어 은혜로운 마음이 통하게 해야 한다. 상복을 함께 입고 밥을 같이 먹던 돈독한 마음으로 백세의 친족을 두텁게 하고, 온 집안에 끝없는 복을 이르게 한다면, 어찌 뿌리가 단단한 나무에 아름드리 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과 다르겠는가! 아, 슬프다! 세상의 도리가 어지러워져 자격 없는 자들이 자리를 훔치고 높은 벼슬을 얻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 지 오래되었다. 공자의 마을(阙里)은 쓸쓸하여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선비 된 자들은 경박하고 구차하며 간략하게 때우는 나쁜 습성에 얽매여 있고, 성현의 학문은 늘 굽어 들고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학(道學)을 말하면 큰 근본을 잃어버리고, 실무를 논하면 임기응변의 권도(權道)만을 숭상하며, 부질없는 화려함만을 자랑하고 근본적인 실체를 잊고 있다. 출세만을 귀하게 여기고 명예와 품행을 지키는 법도를 천하게 여기니, 기강이 서지 않고 예의가 폐지되어 파괴되었으며, 인륜의 법도가 다스려지지 않아 온통 무도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행동의 차례는 부모 자식도 없이 짐승과 같고, 거친 언사는 오랑캐와 다름이 없다. 밖으로 나가면 씨족의 근심거리가 되고, 집으로 들어오면 향리의 걱정거리가 되니, 이는 천리를 해치고 인륜을 어지럽히며 대도를 가로막고 풍속과 교화를 무너뜨리는 짓이다. 참으로 한 사람이 덥히고 열 사람이 차갑게 하듯, 수많은 방해가 따르는 세상의 근심을 이기지 못하겠다. 못난 나는 아는 지식이 매우 짧고 책이나 읽는 융통성 없는 선비(迂儒)인지라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끝내 강호의 한가로운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보잘것없는 반딧불이 같은 미약한 목숨으로 해와 달 같은 조상의 밝은 덕에 의지하여 겨우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 발문을 쓰라고 위촉하시니, 차마 나의 천하고 누추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문득 붓을 잡아 조상과 씨족을 사모하는 근본을 높이 들추어내는 바이다. 뿌리가 단단하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조상을 존경하면 후손들에게 영원히 복을 내려주신다. 조상을 존경하는 도리는 제사를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모시는 데 있다. 눈앞의 인륜과 예법이 모두 상실되어 가는 이때에, 혹시나 조상을 숭상하고 엄숙히 공경하는 마음이 나날이 쇠퇴하고, 동종(同宗)끼리 돈독하게 화목하고 널리 사랑하는 풍조가 점차 미련하고 완고한 데 물들어, 혹 예법의 조절에 합치되지 못하고 정성을 다하지 못할까 두렵다. 그러므로 나는 이로써 대략 거친 글을 서술하여 감히 이 책의 첫머리에 올리며, 선조들의 훌륭한 뜻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뜻을 전하는 바이다. 후손 우하(宇河) 삼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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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2004년 9차 행주기씨대동보서幸州奇氏大同譜序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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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9차-幸州奇氏大同譜序 夫宗族者, 異派同根, 百世同譜. 上而推敍昭穆, 永切孝思; 下而分別親疏, 各有等殺. 骨肉贊美, 彰明懿親, 生相親愛, 死相哀痛, 排難恤孤, 恩以亢宗. 所以麟趾振振, 紀理族인也. 吾奇氏肇自殷師受命東國, 敬敷條敎, 恢張四維. 風偃於邦家, 湊仁于黎元以來. 唯我先祖虔承德敎, 操存守仁, 孝友廉白而道匡雅俗; 奕世忠義而鑱名泰華; 發明經術而卓立千古; 德流子孫而高秩厚禮. 則至於敬義之所服, 精意之所感. 其休德清英, 淑聲餘裕, 久而彌劭, 拳拳而不能自己者焉. 噫! 享於祖考, 報本反始, 修先以崇恩, 人子之追孝야. 露濡霜降, 必有悽愴怵惕之心, 罔不流涕. 雲物變采, 井泉湧發, 蓋天性之所感. 而況於顯顯令德, 皇皇賢祖, 百代不遷, 祠事孔修, 尊祖以致享, 奉先以盡禮者哉! 第念歷三韓、羅麗, 迄近朝鮮, 碩果之報, 冥理不誣. 忠孝志節, 道德文章, 或父子趾美, 或兄弟聯懿, 洋洋有餘也. 兹者, 顯中祖貞武公, 清白高潔, 盖頭葬親, 杏林厲人, 鯽鰒不食; 莊陵慘惻, 青盲立節, 啓沃上疏, 可謂合陸宣公、胡澹菴、伏龍、鳳雛이爲一人者, 昭光于汗青. 貞烈公, 繩其祖武, 燕翼貽謀. 文愍公, 幼而徇齊, 桂林一枝, 己卯士禍, 投荒賦鵬, 遺芳千載, 世稱己卯名賢. 文憲公, 生而神俊, 志學洛閩, 修文經術, 蹈德詠仁, 侍講論思, 守義明經, 縉紳咸望之如景星鳳凰. 晚全堂相國公, 班朝鷺序, 羽儀輔衮, 託寄永昌, 若周公之臨大節, 閉門把節, 竟殺身以成仁. 文簡公, 生知神童, 過目皆憶, 百氏珠貫, 接洙泗之淵源, 傳尼山之鉢衣也. 以上六位昭穆, 躋書院而昭升, 嚴配時祀, 薦饗廟學. 因時聚衆, 有敎學興禮, 崇祖厲賢, 移風易俗. 其餘賢祖, 稍有未安, 理勢不得已也. 余新譜入梓臨迫之際, 秠述書院之原委, 當就其布帛菽粟而盡心焉. 使後來裔孫, 周知其指趣, 崇祖報功之心, 油然勃興以然也. 嗟乎! 世遠人亡, 經殘敎弛, 異端左道, 風俗退敗. 聚麀亂倫之風謑髁, 無任敦倫睦族之心, 日益弛緩. 故厥或一部宗親, 未能識修譜之義, 收族處事, 或怠惰偸儒爲安, 或微門冷族, 丱童無知爲事. 荏苒經年, 遷延其有修譜之役, 安得無戚戚於中哉! 然而尚幸大宗中幹翼與各派門中有司, 子來協贊, 勞效告迄. 余序其修譜, 藉口以駘背昏耄, 有所不敢閣筆, 遂敢妄論如右. 其他餘事, 閎衍侈奢, 故不復致詳于贅言也. 檀紀四三三六年 癸未 仲冬 幸州奇氏大宗中會長 世勳 謹序 무릇 종족(宗族)이라는 것은 파는 다르나 근본은 하나이며, 백세토록 동의하는 하나의 족보를 갖는 것이다. 위로는 소목(昭穆, 조상의 순서)을 미루어 서술하여 조상을 효성스럽게 추모하는 마음을 영원히 간절히 하고, 아래로는 친하고 소원함을 분별하여 각각의 멀고 가까운 차등을 두는 것이다. 골육 간에 서로 찬미하고 훌륭한 친족을 밝히며, 살아생전에는 서로 친애하고 죽어서는 서로 애통해하며, 어려움을 배척하고 고아를 구휼하여 은혜로써 가문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손이 번성하는 ‘린지(麟趾)’의 도리를 떨치고 족인들을 다스리는 법도이다. 우리 기씨(奇氏)는 은나라의 태사이신 기자(箕子)께서 동방(조선)에 명을 받으신 이래로, 조항과 교화를 공경히 펴시고 인륜의 기강을 넓히셨다. 그리하여 나라에 풍교(風敎)가 내리고 백성들에게 인(仁)이 모여든 이래로, 오직 우리 선조들께서德敎(德敎)를 경건히 이어받으셨다. 마음을 잡고 인을 지키며, 효도하고 우애하며, 청렴하고 결백하여 그 도리로써 세속의 풍속을 바르게 교정하셨다. 대대로 충의를 다하여 태산과 화산에 이름을 새기셨고, 경술(經術)을 발명하여 천고에 탁월하게 자립하셨으며, 덕이 자손에게 흘러 높은 관직과 두터운 예우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경(敬)과 의(義)가 복종하는 바와 지극한 정성이 감동하는 바에 이르렀으니, 그 아름다운 덕의 맑고 영특함과 어진 명성의 넉넉한 여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사모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아!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 것은 근본에 보답하고 시작으로 돌아가는 일(報本反始)이며, 선조를 기려 그 은혜를 숭상하는 것이니, 이는 자식 된 자가 효도를 쫓는 길이다. 이슬이 적시고 서리가 내릴 때면(露濡霜降) 반드시 슬프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구름과 만물의 색채가 변하고 우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은 대개 천성에서 감동하는 바인데, 하물며 뚜렷하고 아름다운 덕을 지니신 황황하신 현명한 조상님들을 백대토록 옮기지 않는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성대히 받들며, 조상을 존경하여 제사를 올리고 선조를 받들어 예법을 다함에 있어서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생각건대, 삼한과 신라, 고려를 거쳐 최근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쌓은 덕의 열매로 후손이 복을 받는 ‘석과의 보답’이라는 저승의 이치는 속임이 없다. 충효와 지절,道德과 文章에 있어서 혹은 아버지가 아름다운 자취를 밟으면 아들이 이어가고, 혹은 형제가 아름다움을 나란히 하여 가문의 영광이 풍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제 현조들을 살펴보면, 중조(中祖)이신 정무공(貞武公, 기건)께서는 청백하고 고결하시어, 눈을 가리고 부모의 상을 치르셨고(盖頭葬親), 살구 수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셨으며(杏林厲人), 벼슬길에 물러나서는 조기와 전복을 먹지 않으셨다. 단종(莊陵)의 참혹한 죽음에 마음 아파하시며 눈먼 장님인 체하며 절개를 지키셨고(青盲立節),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이끄는 상소를 올리셨으니, 가히 당나라의 육선공(陸宣公)과 송나라의 호담암(胡澹菴), 그리고 제갈량(伏龍)과 방통(鳳雛)을 합쳐 한 사람으로 만든 듯하여 그 이름이 역사(汗青)에 찬란히 빛나고 계신다. 정렬공(貞烈公, 기찬)께서는 그 조상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으시어(繩其祖武), 후손들을 도모하는 훌륭한 계책을 남겨주셨다. 문민공(文愍公, 기효간)께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셨고 가문의 큰 인재이셨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당하여 거친 변방으로 유배 가셔서 〈부鵬조부(賦鵬)〉를 지으시며 맑은 향기를 천재에 남기셨으니, 세상에서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일컫는다. 문헌공(文憲公, 기대승)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비롭고 준수하셨으며, 주자와 정자의 학문(洛閩)에 뜻을 두어 문학과 경술을 닦으셨고, 덕을 밟고 인을 읊조리셨다. 임금에게 학문을 모시고 토론하셨으며, 의리를 지키고 경전에 밝으시니, 모든 선비와 고관(縉紳)들이 서기 어린 별과 봉황(景星鳳凰)을 바라보듯 우러러보았다. 만전당 상국공(晚全堂 相國公, 기자헌)께서는 조정의 반열(鷺序)에 올라 임금을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가 되셨고, 광해군 시절 영창대군을 영원히 보호하라는 탁시를 받드셨으니, 마치 주공(周公)이 큰 대절에 임한 듯하셨다. 문을 닫아걸고 절개를 지키시며 마침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를 이루셨다. 문간공(文簡公, 기정진)께서는 나면서부터 아시는 신동이시라 눈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모두 기억하셨고, 백가(百家)의 학문을 구슬을 꿰듯 꿰뚫으셨으니, 공자와 맹자의 학문(洙泗)의 원연에 접하시고 주자의 도통(尼山之鉢衣)을 전해 받으셨다. 이상의 여섯 분의 소목(昭穆) 지위는 서원(書院)에 모셔져 밝게 오르셨으며, 철저한 예법에 따라 철마다 제사를 받들고 사당과 학당에 음식을 올리고 있다. 때에 맞추어 문중들이 모여 학문을 가르치고 예절을 일으키며, 조상을 숭상하고 현인을 격려하여 풍속을 바꾸고 세속을 변화시키고 있으니, 그 외의 다른 현조들께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이치와 형세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새로운 족보를 인쇄(入梓)하기 직전에 이르러 대략 서원의 원위(原委)를 서술하는 것은, 마땅히 입는 옷과 먹는 양식처럼 친근하고 긴요한 일에 마음을 다하고자 함이다. 뒤에 오는 후손들로 하여금 그 취지를 두루 알게 하여, 조상을 숭상하고 그 공덕에 보답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기름지듯 힘차게 일어나게 하려는 까닭이다. 슬프도다! 세대는 멀어지고 옛 어른들은 돌아가셨으며, 경전은 파괴되고 가르침은 느슨해져서, 이단과 사악한 도가 판을 치고 풍속이 퇴폐해졌다. 인륜을 어지럽히는 부끄러운 풍조가 만연하여 인륜을 돈독히 하고 씨족을 화목하게 하려는 마음이 나날이 느슨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혹 어떤 일부 종친들은 족보를 수정하는 대의를 알지 못하여, 일족을 거두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혹 게으르고 구차하게 편안함만을 취하기도 하며, 혹은 미약하고 냉대받는 가문이라 하여 무지한 아이들의 장난처럼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아까운 세월을 흐지부지 보내며 족보를 수정하는 역사를 미루어 왔으니, 어찌 내 마음속에 슬프고 탄식스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대종회의 여러 간부들과 각 파문의 유사(有司)들께서 자식들이 부모의 일에 달려오듯 기쁘게 협찬하여 주신 덕분에, 마침내 노고의 보람으로 가쁜 결실을 고하게 되었다. 내가 이 족보의 수정을 축하하며 서문을 쓰게 됨에 있어서, 비록 늙고 혼미하다는 핑계(駘背昏耄)로 감히 붓을 꺾지 못하고 마침내 망령되이 위와 같이 논하게 되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너무나 방대하고 번잡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로 다시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단기 4336년(2003년) 계미년 동지달(11월) 행주기씨 대종중 회장 세훈(世勳) 삼가 서문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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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2004년 9차보 다른 서문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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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9차보-다른-서문 夫族譜之義何哉? 氏族之譜錄, 而收宗族長幼之名, 奠繁世以知其所自出, 辨昭穆以知其世序也. 於是, 百世不遷之大宗, 五世則遷之小宗, 乃是三從九親則別疏昵之序, 五服六親則等緦麻之心. 蓋人之心情, 其宗族遠則疏之, 彌遠則益疏, 而至于忘之. 此以身爲親疏, 而不以先人爲親疏也. 若己之子與兄之子, 吾視之則兩者, 始有異; 父視之則不知其異同矣. 推而上之, 祖父之孫爲從父兄弟, 曾祖父之曾孫爲從祖兄弟, 及推而上之, 至于無服. 雖天下之長者, 不能無親疏之隆殺矣. 於是制服, 不得不若是也. 然而推而上世, 愛其子孫之心則一也, 又豈以疏遠而忘之哉! 宗族以敦倫睦族爲先. 故書載堯典, 首陳睦族; 詩傳周德, 宗子維城. 乃是義莊之設, 蓋其於是. 錢公輔《義田記》曰, “范文正公方貴顯時, 置負郭常稔之田千畝, 號曰義田, 以養濟群族之人. 日有食, 歲有衣, 嫁娶喪葬, 皆有贍.” 嗟乎! 挽近世態炎涼, 西勢東漸. 紫色蛙聲, 敗常亂俗. 利欲之心紛拏, 恥畏之情轉寡. 盜心起於蕭牆之内, 剽掠生於骨肉之親. 草竊姦究, 闔境競逐. 葬彛倫攸斁, 弊世生靈. 余今修譜入梓之際, 鯫生不佞, 耄齡崦嵫, 迫身而肆筆弁言, 遂敢妄辯. 切偲因睦, 合族引伸. 義莊之設, 親親之恩, 行葦葛藟, 救恤振滯, 形於軫惻. 立愛惟親, 立敬惟長. 承先裕後, 閥閱右族. 畢萬之后, 必大期望. 寅虔耳. 檀紀四三三六年 癸未 南至節 后孫 宇河 謹序 무릇 족보(族譜)를 만드는 의의는 무엇인가? 씨족의 계보를 기록하여 종족 안의 어른과 아이의 이름을 거두고, 번성한 세대 속에서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게 하며, 소목(昭穆, 차례)을 분별하여 세대의 차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백세토록 사당을 옮기지 않는 큰 종가(大宗)와 5대 만에 제사를 옮기는 작은 지파(小宗)가 나뉘고, 8촌(三從)과 9족(九親)에 이르러 멀고 가까운 차례를 구별하게 되며, 상복을 입는 다섯 종류의 제도(五服)와 여섯 친족(六親)의 범위를 정해 가벼운 상복(緦麻)을 입는 마음의 차등을 두게 된다. 대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종족이 멀어지면 소원해지고, 더욱 멀어지면 더욱 소원해지다가 마침내 서로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이는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가깝고 먼 것을 따질 뿐, 조상을 기준으로 삼아 가깝고 먼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나의 아들과 형의 아들을 내가 바라볼 때는 두 아이가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할아버지(아버지의 아버지)가 바라보실 때는 그 다르고 같음을 알지 못할 만큼 다 같은 자손이다. 이를 미루어 위로 올라가면 할아버지의 손자는 종형제(4촌)가 되고, 증조할아버지의 증손자는 종조형제(6촌)가 되며, 이처럼 위로 미루어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상복을 입지 않는 먼 친척(無服)에 이르게 된다. 비록 천하의 덕이 높은 어른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친소(親疏)의 차등이 없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복의 제도를 정함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대를 위로 거슬러 올라가 조상의 처지에서 보면, 그 후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하나일 뿐이니, 어찌 멀고 소원해졌다 하여 자손을 잊을 수 있겠는가! 씨족 사회에서는 인륜을 돈독히 하고 종족을 화목하게 하는 것(敦倫睦族)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서경(書經)》 요전(堯典)에서도 문중을 화목하게 하는 것을 가장 먼저 진술하였고, 《시경(詩經)》에서는 주나라의 덕을 전하며 "종가(宗子)의 요새와 같다"고 하였다. 옛날 성현들이 ‘의장(義莊)’을 설치한 것 역시 바로 이러한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공보(錢公輔)의 《의전기(義田記)》에 이르기를, “범중엄(范文正公)이 바야흐로 귀하고 현달해졌을 때, 성곽을 등진 기름진 밭 천 에이커(千畝)를 마련하여 ‘의전(義田)’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온 문중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구제하였다. 그리하여 날마다 먹을 것이 있고 해마다 입을 옷이 있었으며, 시집 장가가는 일과 초상과 장례에 모두 넉넉하게 보태어 주었다”라고 하였다. 슬프도다! 요즈음의 세태는 이익에 따라 달아오르고 식으며(世態炎涼), 서양의 풍조가 동양으로 점차 물밀듯 밀려오고 있다. 그리하여 정통을 어지럽히는 잡스러운 소리(紫色蛙聲)가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리고 미풍양속을 어지럽힌다. 이익을 탐하는 마음은 어지럽게 얽혀 다투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도리어 적어졌다. 도둑질하려는 나쁜 마음이 한 집안(蕭牆) 안에서 일어나고, 재물을 빼앗는 짓이 골육 간의 친척 사이에서 생겨난다. 좀도둑과 간사한 무리들이 온 나라에서 다투어 치달으니, 마침내 인간의 도리(彛倫)가 무너져 파괴되어 이 허물어져 가는 세상의 백성들을 해치고 있다. 내가 지금 족보를 고쳐 인쇄(入梓)하는 즈음을 당하여, 이 보잘것없는 사람(鯫生)이 나이는 이미 서산에 해가 걸린 늙은 나이(崦嵫)가 되어 몸을 압박해 오지만, 감히 붓을 들어 책의 머리말(弁言)을 쓰며 망령되이 논해 본다. 부디 서로 간절히 권면하고 화목함을 바탕으로 삼아 온 종족의 결속을 넓혀 가야 한다. 옛날의 의장(義莊)을 설치하던 뜻과 친족을 사랑하는 은혜를 본받아, 《시경》의 행위(行葦)나 갈뢰(葛藟)의 시처럼 곤궁한 처지에 놓인 일가를 구휼하고 정체된 이를 도와주는 온정 어린 마음이 슬픈 측은지심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사랑을 세움은 마땅히 어버이로부터 시작하고, 공경을 세움은 마땅히 어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조의 뜻을 이어받아 후손을 넉넉하게 인도하는 명문거족(閥閱右族)이 되어, 옛날 진나라 필만(畢萬)의 후손들이 반드시 크게 번성할 것이라 예언했던 것처럼, 우리 가문도 반드시 크게 번성하기를 공경스럽고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단기 4336년(2003년) 계미년 동지달(南至節) 후손 우하(宇河) 삼가 서문을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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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2004년보 발문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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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보-발문 우리 奇氏의 壬戌譜도 於焉間 二十餘年이 經過하였습니다. 그 當時는 幼年期에 있었던 우리의 叢生들도 이제는 堂堂한 大夫가 되여 壬戌譜編纂族譜를 살펴보 고 誤記 漏落 不單 未登載로 如出一口族譜編修宗親要求에따라 辛巳年十月大宗中 總會에서 決定하였습니다. 大概族譜는 三十年을 一期로하나 今曰實情으로 보아 急速發展하여가는 此際 二十年을 間隔으로 一期를 調整하는것도 亦是時代의 適應으로 生覺하고 우리奇氏도 새로이 族譜編纂이 要望됨으로 推進委員會를 構成하고 編修會長에 世勳, 總務部長에 廣舒, 收單部長에 老然, 編修部長에 宇河, 審查部長에 雲變. 財務部長에 雲度, 常任에는 吉洙, 建度, 老杓, 光舒, 雨相으로 選任하고 大同譜所는 서울大宗中, 連絡所는 光州竹峯會館으로 定하여 國内諸宗의 物心兩面의 協助로 大役을 順調롭게 完成함에 編輯에 一部를 加擔한 不肖로서 所感의 一言을 記錄하면서 其外不備하고 未洽한 点은 此後編輯할 諸宗에게 付託하면서 未段의 數言을 添記하는 바이다. 癸未十二月 日 雲變 謹記 우리 기씨奇氏의 임술보壬戌譜(1982년에 나온 족보)도 어언간於焉間(어느덧 마냥) 이십여년二十餘年이 경과經過하였습니다. 그 당시當時는 유년기幼年期에 있었던 우리의 총생叢生(수많은 자손)들도 이제는 당당堂堂한 대부大夫(어엿한 성인)가 되여, 임술보編纂族譜(임술년에 편찬된 족보)를 살펴보고 오기誤記(잘못 적힘), 누락漏落(빠뜨림), 부단不單(단자를 내지 않음), 미등재未登載(기록에 오르지 못함)로 여출일구如出一口(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똑같음)하여, 족보편수族譜編修(족보를 다시 교정하여 엮음)를 종친요구宗親要求에 따라 신사년辛巳年(2001년) 10월 대종중總會(대종회 정기총회)에서 결정決定하였습니다. 대개개大概(대체로) 족보族譜는 삼십년三十年을 일기一期(한 세대의 주기)로 하나, 금일실정今日實情(오늘날의 실제 형편)으로 보아 급속발전急速發展하여 가는 차제此際(이러한 즈음)에, 이십년二十年을 간격間隔으로 일기一期를 조정調整하는 것도 역시시대亦是時代의 적응適應으로 생각하고, 우리 기씨奇氏도 새로이 족보편찬族譜編纂이 요망要望됨으로 추진위원회推進委員會를 구성構成하고, 편수회장編修會長에 세훈世勳, 총무부장總務部長에 광서廣舒, 수단부장收單部長에 노연老然, 편수부장編修部長에 우하宇河, 심사부장審查部長에 운변雲變, 재무부장財務部長에 운도雲度, 상임常任에는 길수吉洙, 건도建度, 노표老杓, 광서光舒, 우상雨相으로 선임選任하고, 대동보소大同譜所(종회 본부 사무실)는 서울 대종중大宗中, 연락소連絡所는 광주竹峯會館(광주 죽봉회관)으로 정定하여, 국내제종國內諸宗(국내의 모든 종친)의 물심양면物心兩面의 협조協助로 대역大役(거대한 역사)을 순조順調롭게 완성完成함에 편집編輯의 일부를 가담加擔한 불초不肖(못난 저)로서 소감所感의 일언一言을 기록記錄하면서, 그 외 외부비不備하고 미흡未洽한 점點은 차후편집此後編輯할 제종諸宗(앞으로 족보를 엮어갈 후손 종친들)에게 부탁付託하면서 미단尾段(글의 맨 끝머리)의 수언數言(몇 마디 말)을 첨기添記(더하여 기록함)하는 바이다. 계미십이월癸未十二月(2003년 음력 12월) 일 운변雲變 삼가 기록함謹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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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2004년보 다른 발문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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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보-다른-발문 우리 奇氏得姓이 羅麗로 부터 世代가 이미 멀어지고 各派의 後孫들이 全國에 散在하여 或은 傳家의 載籍을 亡缺하고 往往이 先代無證을 歎息하도다. 大概 族譜는 三十年을 一世로 定하고 지금까지 이어왔으나 오늘날 科學이 高度로 발달하고 社會風潮가 急速變化하는 此際에 우리 姓氏도 二十餘年이 지나 금번 修譜를 하게 된 것은 그간의 生卒이 頗多하고 또 叢生들이 繁昌하여 時代변천의 要望에 따라 앞으로 책으로 만드는 보첩은 어려울 것 같고 수보의 식견을 가진 어른들도 점차 연로 하셔서 부득이 지난 辛巳年末에 元堂 德陽書院에서 推進委員會를 構成하여 會長에 世勳氏 總務部長에 廣舒氏 財務部長에 雲度氏 編修部長에 宇河氏 收單部長에 老然氏 審查部長에 雲變氏 常任委員에 吉洙 建度氏 校正에 老杓 光舒氏 僉宗이 不撤晝夜로 同心齊力을 다하고 또 各處宗親의 協助로 엔 코리안 社長以下 社員들의 誠意로 因하여 數年間의 大役을 完成함에 있어 不肖의 所感 一言을 卷末에 記錄하는 바이다. 歲 甲申 八月日 海錫 謹記 우리 기씨奇氏의 득성得姓(성씨를 얻음)이 라려羅麗(신라와 고려)로부터 세대世代가 이미 멀어지고, 각파各派의 후손後孫들이 전국全國에 산재散在(흩어져 살음)하여 혹은 전가傳家의 재적載籍(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책과 기록)을 망결亡缺(잃어버려 없어짐)하고 왕왕往往이 선대무증先代無證(앞 세대의 기록과 고증이 없음)을 탄식歎息하도다. 대개개大概(대체로) 족보族譜는 삼십년三十年을 일세一世(한 세대)로 정定하고 지금까지 이어왔으나, 오늘날 과학科學이 고도高度로 발달하고 사회풍조社會風潮가 급속변화急速變化하는 차제此際(이러한 즈음)에 우리 성씨姓氏도 이십여년二十餘年이 지나 금번 수보修譜(족보를 개수함)를 하게 된 것은, 그간의 생졸生卒(태어나고 죽음)이 파다頗多(매우 많음)하고 또 총생叢生(수많은 자손)들이 번창繁昌하여 시대時代 변천의 요망要望에 따라 앞으로 책으로 만드는 보첩寶첩(종이 족보 책)은 어려울 것 같고, 수보修譜의 식견識見을 가진 어른들도 점차 연로延老하셔서 부득이 지난 신사년辛巳年(2001년) 말에 원당元堂 덕양서원德陽書院에서 추진위원회推進委員會를 구성構成하여, 회장會長에 세훈世勳 씨, 총무부장總務部長에 광서廣舒 씨, 재무부장財務部長에 운도雲度 씨, 편수부장編修部長에 우하宇河 씨, 수단부장收單部長에 노연老然 씨, 심사부장審查部長에 운변雲變 씨, 상임위원常任委員에 길수吉洙·건도建度 씨, 교정校正에 노표老杓·광서光舒 씨 등 첨종僉宗(모든 종친)이 불철주야不撤晝夜(낮과 밤을 가리지 않음)로 동심제력同心齊力(마음을 합하고 힘을 하나로 모음)을 다하고, 또 각처종친各處宗親의 협조協助와 엔 코리안 사장이하사장以下 사원社員들의 성의誠意로 인因하여 수년간數年間의 대역大役(거대한 역사)을 완성完成함에 있어, 불초不肖(못난 저)의 소감所感 일언一言을 권말卷末(책의 맨 끝머리)에 기록記錄하는 바이다. 세 나이歲 갑신년甲申年(2004년) 8월 일 후손 해석海錫 삼가 기록함謹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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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2004년 9차보 다른 발문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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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族譜를 所重히 여기는 緣故는 先祖가 남기신 美德을 崇仰하고 實踐함 으로 後孫을 啓導하고 宗家를 받들고 宗親間에 和睦케 하며 祖上들의 氣像을 繼承하고 子孫에갠 올바른 氏族의 史案을 記錄하여 祖系와 孫支와 派別이 모두 그 子孫으로 傳統同祖인 後孫임을 알게 함이라 生覺합니다. 萬枝一根이요 千派同源이라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祖上없는 子孫이 있을 수 없다] 는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時代의 變遷如何를 不問하고 同族後孫으로서는 祖上을 恒常 欽奉하고 銘心不 忘해야 될 敎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現實은 利己主義와 黃金萬能의 物質文明이 極致에 이르고 요즈음은 호주제를 폐지하여 父系혈통을 끊으려는 社會풍조로 人間社會 偷理道德은 衰退 할대로 衰退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時期일수록 先祖 代代로 繼承된 同宗族間에 系譜를 되찾아 整理하고 特히 貴重한 祖上의 遺訓 遺德을 오늘에 되살려 崇慕遵守함으로써 崇祖惇宗의 뜻을 高揚함은 매우 切實한 일이라 生覺합니다. 우리族譜는 一次 甲辰譜(一六六四年)부터 八次 壬戌譜(一九八二年)까지 發行 頒帙되었으며 祖上님들의 蔭德과 노력에 힘입어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族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八次 壬戌譜가 누락(不單)된 宗親들이있어 三十年이 못되었지만 지난 2001年 3/4분기 大宗中理事會에서 故人이된 浩烈宗親의 族譜發行 내용 설명의 발의로 理事會 동의를 얻고 4/4분기 정기총회에서 의안통과 결의를 거쳐 수차례 이사회 편수위원회의 모임을 갖고 2002年 3月부터 수단위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활동에 착수한 수단위원들의 활동에는 生覺보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時代의 變遷으로 族譜의 貴重함의 이해부족과 심지어 질타(족보무용론)까지 하는 일부종친들을 대화와 설득 과정을 거쳐 동참토록 하여 不單者 없는 대동보 만들기에 全編修委員 및 수단위원들은 갖은 노력을 하였으며 모든 것은 [범례] 준수 즉 壬戌譜에 依據 綿密히 檢討 對照 해가며 世系가 分明치 않았거나 瑕疪誤謬 等은 여러차례 審查委員會를 열어 處理했으며 後孫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손들이 필요로 하는 族譜만들기에 온갖 정성을 모았으며 한편으로는 우리祖上님들에게 累가 되지않는 族譜만들기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선현들께서는 朝鮮朝때 정무공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學文을 숭상하고 仁義를 重히 여기는 선비의 전통을 이어 오면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목숨을 바쳐 호국을 하였고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청백리(清白吏)의 신념으로 백성들을 돌보며 멸사봉공하여 곳곳에 이를 기리는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한 번도 세인에게 지탄을 받는 오명을 남기지 않는 참으로 고결한 가풍을 이어 오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감히 남앞에 당당히 가계를 논하고 선영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튼튼하면 바람에 강하듯이 우리 가문은 이렇듯 탄탄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항상 자중자애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또한 우리 일가는 이 族譜를 통하여 한뿌리임을 확인하고 상부상조 하면서 우애 깊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族譜는 우리 가문의 뿌리를 확인하는 기록임은 물론 미래의 우리 후손에게 나의 기록을 담아 넘겨주는 가보이며 우리 奇姓은 소중히 여기고 늘 읽어야 할 역사책입니다. 끝으로 이 族譜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하신 과정에 故人이 된 浩烈종친과 雲 度종친께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後孫 廣舒 謹記 2004년-9차보-다른-발문 우리가 족보族譜(씨족의 계보를 기록한 책)를 소중所重히 여기는 연고緣故(까닭)는 선조先祖가 남기신 미덕美德(아름다운 덕행)을 숭앙崇仰(높이 우러러봄)하고 실천實踐함 으로 후손後孫을 계도啓導(열어 인도함)하고 종가宗家를 받들고 종친간宗親間에 화목和睦케 하며 조상祖上들의 기상氣像을 계승繼承하고 자손子孫에겐 올바른 씨족氏族의 사안史案(역사적 기록)을 기록記錄하여 조계祖系(조상의 계통)와 손지孫支(자손의 갈래)와 파별派別(갈라진 파)이 모두 그 자손子孫으로 전통동조傳統同祖(전통적으로 같은 조상)인 후손後孫임을 알게 함이라 생각生覺합니다. 만지일근萬枝一根(만 가지도 뿌리는 하나)이요 천파동원千派同源(천 갈래 흐름도 근원은 하나)이라 [뿌리없는 나무가 없고 조상祖上없는 자손子孫이 있을 수 없다] 는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시대時代의 변천여하變遷如何(바뀌고 변하는 어떠함)를 불문不問(묻지 않음)하고 동족후손同族後孫으로서는 조상祖上을 항상恒常 흠봉欽奉(공경하여 받듦)하고 명심불망銘心不忘(마음에 새겨 잊지 않음)해야 될 교훈敎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現實은 이기주의利己主義와 황금만능黃金萬能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이 극치極致에 이르고 요즈음은 호주제를 폐지하여 부계父系 혈통을 끊으려는 사회社會 풍조로 인간사회人間社會 윤리도덕倫理道德(인간의 도리와 떳떳한 행실)은 쇠퇴衰退할대로 쇠퇴衰退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時期일수록 선조先祖 대대로代代로 계승繼承된 동종족간同宗族間(같은 일가 사이)에 계보系譜를 되찾아 정리整理하고 특히特히 귀중貴重한 조상祖上의 유훈遺訓(남기신 가르침) 유덕遺德(남기신 덕택)을 오늘에 되살려 숭모준수崇慕遵守(우러러 사모하고 받들어 지킴)함으로써 숭조돈종崇祖惇宗(조상을 숭상하고 친족과 화목함)의 뜻을 고양高揚(높이 들어 올림)함은 매우 절실切實한 일이라 생각生覺합니다. 우리 족보族譜는 일차一次 갑진보甲辰譜(1664년에 발행된 족보)부터 팔차八次 임술보壬戌譜(1982년에 발행된 족보)까지 발행發行 반질頒帙(책을 나누어 가문의 집에 돌림)되었으며 조상祖上님들의 음덕蔭德(조상이 알게 모르게 베푼 덕)과 노력에 힘입어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족보族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팔차八次 임술보壬戌譜가 누락(부단不單: 단자를 내지 않음)된 종친宗親들이있어 삼십년三十年이 못되었지만 지난 2001년 3/4분기 대종중이사회大宗中理事會에서 고인故人이된 호열浩烈 종친宗親의 족보발행族譜發行 내용 설명의 발의로 이사회理事會 동의를 얻고 4/4분기 정기총회에서 의안통과 결의를 거쳐 수차례 이사회 편수위원회의 모임을 갖고 2002년 3월月부터 수단위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활동에 착수한 수단위원들의 활동에는 생각生覺보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시대時代의 변천變遷으로 족보族譜의 귀중貴重함의 이해부족과 심지어 질타(족보무용론)까지 하는 일부종친들을 대화와 설득 과정을 거쳐 동참토록 하여 부단자不單者(단자를 누락한 사람) 없는 대동보 만들기에 전편수위원全編修委員 및 수단위원들은 갖은 노력을 하였으며 모든 것은 [범례] 준수 즉 임술보壬戌譜에 의거依據(바탕하여) 면밀綿密히 검토檢討 대조對照 해가며 세계世系(조상의 계통)가 분명分明치 않았거나 하자오류瑕疪誤謬(흠집과 잘못) 등等은 여러차례 심사위원회審查委員會를 열어 처리處理했으며 후손後孫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손들이 필요로 하는 족보族譜만들기에 온갖 정성을 모았으며 한편으로는 우리조상祖上님들에게 루가 되지않는 족보族譜만들기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선현들께서는 조선조朝鮮朝 때 정무공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학문學問을 숭상하고 인의仁義를 중重히 여기는 선비의 전통을 이어 오면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목숨을 바쳐 호국을 하였고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청백리淸白吏(재물 욕심이 없고 청렴한 관리)의 신념으로 백성들을 돌보며 멸사봉공하여 곳곳에 이를 기리는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한 번도 세인에게 지탄을 받는 오명을 남기지 않는 참으로 고결한 가풍을 이어 오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감히 남앞에 당당히 가계를 논하고 선영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튼튼하면 바람에 강하듯이 우리 가문은 이렇듯 탄탄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항상 자중자애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또한 우리 일가는 이 족보族譜를 통하여 한뿌리임을 확인하고 상부상조 하면서 우애 깊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족보族譜는 우리 가문의 뿌리를 확인하는 기록임은 물론 미래의 우리 후손에게 나의 기록을 담아 넘겨주는 가보이며 우리 기성奇姓은 소중히 여기고 늘 읽어야 할 역사책입니다. 끝으로 이 족보族譜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하신 과정에 고인故人이 된 호열浩烈 종친과 운도雲度 종친께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후손後孫 광서廣舒 삼가 기록함謹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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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4년 9차보 편집후기編輯後記 | 기회근2 | 2026-08-06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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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聖賢의 治世의 道는 百姓으로 하여금 위로 祖上의 遺烈을 繼承하고 아래로 子孫에게 올바른 計課릍 주고 곁으로 九族에게 親合하게하여 이를 마음에 얻고 몸소 實踐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니 여기에 祖上의 系譜와 子孫의 支流와 九族의 派閥은 다 族譜에 갖추어 있음으로 그 族譜릍 보고 그 道릍 생각하면 또한 반드시 그 마음에 感激하고 그 躬行에 도움이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이 옛날에 聖賢께서 族譜릍 貴重하게 여기고 三十年을 一世로 하여 修譜한바이니라. 그러나 西洋의 物質文明의 急速한 流入으로 因하여 우리나라의 傳統의 道德觀念인 崇祖報本의 思想과 敦倫睦族의 理念이 解弛됨으로 여기에 壬戌譜 以後에 二十三年을 期하여 다시 甲中譜릍 編修하게되니라. 생각건대 近來에 妄想의 一部의 人士가 箕子東來說을 否認함으로 여기에 箕子께서 東國에 오신 근거인 여러 史記 및 諸文獻을 摘抉하여 參考의 便宜에 提供하였으며 特히 黃帝以來 箕子朝鮮 및 馬韓王朝에 이르기까지의 嫡統의 系譜릍 明確히 表示하여 後來子孫으로 하여금 그 祖上의 沿革을 同知하게 하니라 또 誌狀錄에 祖上의 遺業을 記載함에 있어서 조금 그 상하의 順位가 어긋남이 있는 것은 그間 數次의 族譜의 編纂과 收單의 先後로 말미암아 不得己 그렇게 된 것을 여러 宗親께서는 諒解하여주시기를 바라니라. 今般에 大同譜編纂委員會의 會長이신 世動尊丈께서는 耄齡을 超過하신 老翁임에도 不拘하고 始終토륵 心神을 다하여 編修에 督勵하시고 總務部長인 廣舒宗親은 그 住居가 光州임에도 不拘하고 譜所인 高陽元堂을 不遠千里하고 心血을 傾注하여 東奔西走하면서 族譜의 編纂에 寄與한 功勞가 크며 收單部長인 老然宗親은 譜所에 恒常滞留하면서 擔當한 部署以外에 書役을 맡아서 努力릍 아끼지 아니한 수고가 至大하고 또 審查部長인 雲燮宗親께서는 九十歲에 가까운 年齡임에도 不拘하고 誠心으로 族譜의 編輯事業에 많은 힘을 쓰신 功勞에 致賀하며 財務部長을 擔當한 雲度宗親께서는 身命을 다하여 門中大事와 族譜編纂에 奉仕하다가 過勞로 因하여 腦卒症으로 中途에 幽冥을 달리한데 대하여 그 靈魂과 遺族에게 깊은 哀掉릍 表示하옵고 其他 여기에 列舉하지 아니한 여러宗親께서도 物心兩面으로 心身을 傾注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깊은 謝意릍 表明하옵고 不肖生은 不佞한 才能인데도 編修部長의 職責을 授與함으로 今般 族譜의 編修에 있어서 萬分의 하나나마 그 所任의 職責을 다하지 못한데 대하여 깊은 贖罪릍 求하옵고 編修의 役事가 마무리 한 時点에서 몇 가지 느낀 바를 族譜의 末尾에 記載한 것이 이와 같으며 끝으로 全國에 계신 江湖의 諸宗親에게 家庭에 無窮한 健勝과 榮達이 있으시기를 析願하면서 이로써 編輯後記에 人事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니라. 擅紀 四三三七 甲中 仲秋 後孫 宇河 謹識 2004년-9차보-編輯後記 옛날 성현聖賢(성인과 현인)의 치세의 도治世之道(세상을 다스리는 도리)는 백성百姓으로 하여금 위로 조상祖上의 유렬遺烈(남기신 공로와 업적)을 계승繼承(이어받음)하고 아래로 자손子孫에게 올바른 계과計 (계책과 가르침)를 주고 곁으로 구족九族(고조부부터 현손까지의 친척 직계)에게 친합親合(서로 친하고 화목함)하게하여 이를 마음에 얻고 몸소 실천實踐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니 여기에 조상祖上의 계보系譜(조상의 계통)와 자손子孫의 지류支流(갈라진 파)와 구족九族의 파벌派閥(갈라진 파)은 다 족보族譜에 갖추어 있음으로 그 족보族譜를 보고 그 도道를 생각하면 또한 반드시 그 마음에 감격感激하고 그 궁행躬行(몸소 실천함)에 도움이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이 옛날에 성현聖賢께서 족보族譜를 귀중貴重하게 여기고 삼십년三十年을 일세一世(한 세대)로 하여 수보修譜(족보를 개수함)한바이니라. 그러나 서양西洋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의 급속急速한 유입流入으로 인因하여 우리나라의 전통傳統의 도덕관념道德觀念인 숭조보본崇祖報本(조상을 숭상하고 근본에 보답함)의 사상思想과 돈륜睦族敦倫睦族(인륜을 돈독히 하고 종족과 화목함)의 이념理念이 해이解弛됨으로 여기에 임술보壬戌譜(1982년 족보) 이후에 이십삼년二十三年을 기期하여 다시 갑신보甲申譜(2004년 족보)를 편수編修(교정하여 엮음)하게되니라. 생각건대 근래近來에 망상妄想의 일부의 인사人士가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기자가 동쪽 조선으로 왔다는 학설)을 부인否認함으로 여기에 기자箕子께서 동국東國(우리나라)에 오신 근거인 여러 사기史記(역사 기록) 및 제문헌諸文獻(여러 기록과 서적)을 적결摘抉(들추어내어 뽑아냄)하여 참고參考의 편의便宜에 제공提供하였으며 특히 황제이래黃帝以來로부터 기자조선箕子朝鮮 및 마한왕조馬韓王朝에 이르기까지의 적통嫡統(정통 맏아들의 계통)의 계보系譜를 명확明確히 표시表示하여 후래자손後來子孫(뒤에 오는 후손)으로 하여금 그 조상祖上의 연혁沿革(지나온 자취)을 동지同知(함께 앎)하게 하니라 또 지상록誌狀錄(조상의 행적과 묘지명을 기록한 글)에 조상祖上의 유업遺業(남기신 사업)을 기재記載함에 있어서 조금 그 상하의 순위順位가 어긋남이 있는 것은 그간間 수차數次의 족보族譜의 편찬編纂과 수단收單(자료를 거두어들임)의 선후先後로 말미암아 부득이不得己 그렇게 된 것을 여러 종친宗親께서는 양해諒解하여주시기를 바라니라. 금반今般(이번)에 대동보편찬위원회大同譜編纂委員會의 회장會長이신 세훈世勳 존장尊丈(높으신 어른)께서는 모령耄齡(늙은 나이)을 초과超過하신 노옹老翁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시종始終토록 심신心神(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편수編修에 독려督勵하시고 총무부장總務部長인 광서廣舒 종친宗親은 그 주거住居가 광주光州임에도 불구不拘하고 보소譜所(족보 청사)인 고양元堂(고양시 원당)을 불원천리不遠千里(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않음)하고 심혈心血을 경주傾注(모두 쏟아부음)하여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족보族譜의 편찬編纂에 기여寄與한 공로功勞가 크며 수단부장收單部長인 노연老然 종친宗親은 보소譜所에 항상체류恒常滯留하면서 담당擔當한 부서部署 이외에 서역書役(글을 쓰고 교정하는 일)을 맡아서 노력努力을 아끼지 아니한 수고가 지대至大하고 또 심사부장審查部長인 운섭雲燮 종친宗親께서는 구십세九十歲에 가까운 연령年齡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성심誠心으로 족보族譜의 편집사업編輯事業에 많은 힘을 쓰신 공로功勞에 치하致賀하며 재무부장財務部長을 담당擔當한 운도雲度 종친宗親께서는 신명身命(몸과 목숨)을 다하여 문중대사門中大事와 족보편찬族譜編纂에 봉사奉仕하다가 과로過勞로 인因하여 뇌졸중腦卒中으로 중도中途에 유명幽冥을 달리한데(숨을 거둠) 대하여 그 영혼靈魂과 유족遺族에게 깊은 애도哀悼를 표시表示하옵고 기타 여기에 열거列擧하지 아니한 여러 종친宗親께서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심신心神을 경주傾注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깊은 사의謝意를 표명表明하옵고 불초생不肖生(못난 저)은 불벋한 불녕不佞한(재능이 없는) 재능才能인데도 편수부장編修部長의 직책職責을 수여授與함으로 금반今般 족보族譜의 편수編修에 있어서 만분萬分의 하나나마 그 소임所任의 직책職責을 다하지 못한데 대하여 깊은 속죄贖罪를 구하옵고 편수編修의 역사役事가 마무리 한 시점時點에서 몇 가지 느낀 바를 족보族譜의 말미末尾에 기재記載한 것이 이와 같으며 끝으로 전국全國에 계신 강호江湖의 제종친諸宗親에게 가정家庭에 무궁無窮한 건승健勝과 영달榮達이 있으시기를 기원祈願하면서 이로써 편집후기編輯後記에 인사人事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니라. 단기檀紀 사천삼백삼십칠년四三三七 갑신甲申(2004년) 중추仲秋(음력 8월) 후손後孫 우하宇河 삼가 기록함謹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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